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자 워런 버핏의 오랜 동업자인 찰리 멍거가 향년 99세로 별세했습니다. 단순한 부회장이 아니라, 가치투자 철학의 또 다른 축이었던 그가 남긴 흔적을 되짚습니다.
투자 철학의 균형추였던 찰리 멍거
워런 버핏이 세계적인 투자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데는 찰리 멍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멍거는 1959년 처음 버핏을 만났고, 이후 1978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직을 맡으며 회사의 성장 곡선에 함께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버핏의 보조자가 아니라, 오히려 버핏의 투자 철학을 ‘질적으로’ 바꾸어놓은 인물이었습니다. 초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에 가까운 저평가 종목 매집 중심이었지만, 멍거는 더 나아가 ‘훌륭한 회사를 적정 가격에 사자’는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관점 전환은 코카콜라, 질레트, 시즈캔디 등 장기 경쟁력이 있는 브랜드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고, 버크셔의 포트폴리오가 단순 저평가 자산을 넘어 견고한 사업 모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멍거는 투자에서 ‘합리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투자는 주식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라고 말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고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단기 가격 변동보다는 기업의 내재가치에 집중하라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가치투자 원칙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찰리 멍거가 남긴 실질적 성과
멍거의 투자 능력은 이론이나 조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버크셔 합류 전인 1962년, 본인의 투자 파트너십을 설립하여 1975년까지 연평균 19.8%라는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이는 동시기 S&P500의 수익률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입니다. 그는 투자자이자 법률가, 건축회사 경영자 등 다양한 경력을 통해 실제적인 사업 감각을 키워왔습니다. 특히 법률 교육을 받은 투자자로서, 기업 분석에서 ‘지적 절제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버크셔에서는 수십 년 동안 워런 버핏과 함께 주주총회 연단에 나란히 앉아 투자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이어왔습니다. 멍거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과 간결한 논리는 수많은 투자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단순히 투자 종목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서, 투자자의 자세와 태도를 설계한 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리스크 관리의 본질을 꿰뚫은 조언이기도 합니다. 2025년 현재까지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구조와 운용 철학은 멍거의 원칙을 근간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단기 수익을 쫓지 않는 장기 투자 전략의 교과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확신과 장기적 시야
멍거는 미국 중심의 투자 환경 속에서도 아시아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는 생전에 "가장 큰 기회는 아시아에 있다"며, 특히 한국과 중국을 ‘새로운 독일’에 비유할 만큼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나 긍정적 전망이 아니라, 실제 기업 구조와 인재 수준, 생산성, 정책 대응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분석이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자산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과 강한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고, 중국의 소비시장 성장과 기술 내재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빠른 기술 변화나 유행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업 모델’에 주목했으며,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일부 제조 대기업, 소비재 기업 등을 가치투자의 후보다운 자산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멍거의 말은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투자자들에게 하나의 ‘기준선’이 되었습니다. 숫자 너머에 있는 기업의 문화와 철학, 경영진의 판단력을 보는 시야는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투자 기준입니다. 그는 복잡하지 않게 생각하되, 깊이 있게 분석하는 습관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종목을 고르기보다 태도를 고치라는 그의 충고를 되새겨야 할 시점입니다.
결론
찰리 멍거는 ‘부회장’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는 숫자보다 철학으로 시장을 이끌었고, 버핏이라는 거인의 이면에서 늘 한결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가 남긴 투자 원칙은 당분간 그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